며칠 전 서울숲을 산책하다가 오래된 느티나무 한 그루를 만났다. 수령이 백 년은 넘어 보이는 커다란 나무였다. 가지가 사방으로 뻗어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고, 줄기에는 이끼가 끼어 세월의 깊이를 말해주고 있었다. 나는 자주 나무를 관찰하고 그림으로 남기는 취미가 있다. 평일엔 직장에 다니느라 바쁘지만, 주말이면 카메라와 스케치북을 챙겨 나무를 찾아다닌다.

이 느티나무는 특히 인상적이었다. 줄기의 굴곡과 껍질의 질감이 살아있는 듯했다. 주변에 벤치가 있어 앉아서 천천히 바라볼 수 있었다. 나는 먼저 스마트폰으로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구도를 골라 스케치북에 연필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나무를 그릴 때는 전체적인 형태뿐 아니라 가지와 잎사귀 하나하나의 흐름을 살피는 게 중요하다.
사실 나무 그림에 빠진 지는 몇 년 되었다. 처음에는 취미 삼아 시작했는데, 점점 깊이 빠져들었다. 나무마다 다른 생김새와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특히 느티나무는 한국의 대표적인 정자나무로 마을의 역사를 함께해온 경우가 많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따르면 느티나무는 수명이 길고 그늘이 좋아 옛날부터 마을의 쉼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실제로 우리 동네에도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데, 그 나무 아래에서 동네 어르신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는 모습을 자주 본다. 그런 모습을 보면 나무가 단순한 식물을 넘어 공동체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숲은 2005년에 조성된 비교적 새로운 공원이지만, 이 느티나무는 공원이 생기기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을 것이다. 주변에는 다양한 수종이 심어져 있지만, 이 나무만큼 위엄 있는 나무는 드물다. 나는 스케치를 하면서 나무의 생애를 상상해보았다. 이 나무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의 시기를 모두 견뎌냈을 것이다. 그런 역사를 몸에 새긴 듯한 줄기의 흉터가 느껴졌다. 특히 줄기 중간쯤에 있는 커다란 상처는 아마도 전쟁 중 포탄 파편에 맞은 흔적이 아닐까 상상해보았다. 그 상처는 지금은 거의 아물었지만, 나무의 역사를 증언하는 듯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 완성된 스케치는 만족스러웠지만, 집에 가서 수채화로 마무리할 생각이다. 나무 그림은 연필 스케치만으로도 좋지만, 물감으로 색을 입히면 훨씬 생동감이 살아난다. 특히 빛과 그림자를 표현하는 과정이 재미있다. 이번 그림은 오후 3시경에 그리기 시작했는데, 햇빛이 서쪽에서 비스듬히 들어와 나무의 질감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내 주었다. 나는 수채화를 할 때도 그 순간의 빛을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한다.
요즘은 디지털 드로잉도 많이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날로그 방식이 좋다. 종이에 연필이 닿는 감촉과 물감이 번지는 느낌이 주는 만족감이 크다. 또한 완성된 그림을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두면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번 느티나무 그림도 집 서재에 걸어둘 예정이다. 서재에는 지금까지 그린 나무 그림이 여러 점 걸려 있는데, 각 그림마다 그날의 날씨와 기분이 담겨 있어 볼 때마다 새로운 이야기가 떠오른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나무에 대한 애정이 더 깊어진다. 나무는 말없이 서서 수많은 사람의 삶을 지켜봐 왔다. 우리는 바쁜 일상에 치여 그 존재를 쉽게 잊지만, 잠시 멈춰 나무를 바라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는 이런 경험을 블로그에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다. 특히 이번 느티나무처럼 오래된 나무는 그 자체로 역사책과 같다. 나는 그림을 그리면서 나무의 나이테를 상상해보곤 한다. 각 나이테는 한 해의 기후와 환경을 기록하고 있으니, 백 년이 넘는 나무라면 그 속에 백 년의 기후 변화와 인간사의 기록이 고스란히 담겨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나무 그림 그리기를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보도자료에 따르면 서울시가 운영하는 ‘서울숲 나무학교’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도시에서 자연을 체험하고 나무에 대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지는 건 좋은 현상이다. 실제로 지난주에도 서울숲에서 나무 그림 그리기 워크숍이 열렸는데, 참가자들이 각자 다른 나무를 선택해 그림을 그리고 서로의 작품을 감상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한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그분은 젊은 시절부터 나무 그림을 그려왔다고 했다. 그분은 “나무는 늘 거기 있지만, 그리는 사람의 마음에 따라 다르게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이 참 와닿았다.
나무 그림은 단순한 취미를 넘어 자연과 소통하는 방법이다. 그림을 그리면서 나무의 생태와 특성에 대해 자연스럽게 알게 된다. 어떤 나무는 햇빛을 좋아하고, 어떤 나무는 그늘에서 잘 자란다. 잎의 모양도 제각각이라 구별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예를 들어 느티나무는 잎이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고, 표면에 윤기가 나는 것이 특징이다. 반면에 참나무는 잎이 둥글둥글하고, 느릅나무는 잎이 더 길쭉하다. 이런 차이를 하나씩 알아가는 과정이 마치 자연과 대화하는 느낌이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다양한 나무를 그리고 기록할 생각이다. 특히 사계절의 변화를 따라가며 같은 나무를 여러 번 그려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봄에는 연둣빛 새순이, 여름에는 무성한 녹음이, 가을에는 단풍이, 겨울에는 앙상한 가지가 각각 다른 아름다움을 준다. 서울숲의 이 느티나무도 사계절 내내 찾아가 그림을 그려보고 싶다. 벌써 봄에 새순이 돋는 모습, 여름에 짙은 녹음을 드리우는 모습, 가을에 노랗게 물든 모습, 겨울에 눈을 뒤집어쓴 모습이 상상된다. 각 계절마다 나무가 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를 테니, 그 변화를 그림으로 기록한다면 멋진 시리즈가 될 것 같다.
이 글을 읽는 분들도 주변의 나무에 관심을 가져보시길 권한다. 바쁜 일상 속에서도 잠시 걸음을 멈추고 나무를 바라보는 여유를 가져보면 어떨까. 그리고 그 감동을 그림이나 글로 남겨보는 것도 좋은 추억이 될 것이다. 나무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주지만,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그림으로 옮기는 작업을 이어갈 것이다.